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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의 여행2010/03/23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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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너도 나처럼 곧 알게 될거야. 가야할 길을 아는것과 그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 영화 'Matrix' 中  모피어스


- 길 -
길에는 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녹아 있다고 한다.
길을 하나 내기 위해서는 선구자가 있어야 하고, 그 선구자의 미약한 발자취를 쫒는 소수의 무리가 그 발자취에 자신의 여정을 녹여 내어 가면서 그 길은 점차 선명해지고 뚜렷해 진다. 이런 길을 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많은 노력이 그 길 위에 뿌려지지 않고서는 길이라 함은 생성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길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점과 점을 잇듯 구간과 구간을 연결하고 구간의 연장에 따른 시간적 흐름이 발생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기를 즐긴다.


- 혼자 떠난 프랑스 -
업무 차 프랑스 파리로 출장계획이 잡혔다.
해외출장이 처음인데다 혼자서 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은 아침부터 복잡해지고 있다. 공항 이용이 처음은 아니기에 절차는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파리 드골공항에서 부터였다. 입국심사와 공항구조, 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교통편 등등. 인터넷 검색을 마치고 머리속에 준비는 해둔 상태였지만 역시나 불안한건 사실이었다.
자신의 의지로 시작된 배낭여행이었다면 나즈막한 불안감 뒤에 설레임도 컸으련만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버린 출장계획이라 마음을 다잡지 못한 이번 여행에서 설레임을 찾기란 무리한것이었다.
인천 국제 공항에서 직항을 타고(환승편이 아니니 배부른 두려움이었다는걸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샤를 드골 공항에 첫 발을 내딛었다. 낯설은 이국땅에 업무용 가방하나 덩그렇게 둘러메고 사전조사한 데로 입국수속을 마치고 공항 대합실로 나왔다. 하늘도 공기도 같은 것이었지만 이 모든것이 달라보이게 한것은 바로 불안감이었다.
편안한 마음이 없다는 것. 감정이 Low level에 머무른다는 것. 그렇다! 그것은 두려움이다.
   

- 오감(五感) 그리고 제 6의 감각, 육감(六感) -
우리는 기본적으로 오감(五感)을 느낄 수 있는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오감 즉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이 오감은 외부로 부터의 정보를 입수하여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가공케 하고 육체적 반사신경을 작동시키도록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육체적 물리적 감각 이외에 육감(六感)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영혼의 소리, 생각의 힘이다.
오감을 가진 동물들 중에서도 특별히 인간의 그것보다 특정 감각에 있어서 뛰어난 성능을 가진 동물들이 있으며, 오감에 속하지만 인간의 그것과 차별화 되는 동물들이 있다.
독수리는 인간보다 우수한 시각을 보유하였으며, 개는 후각이 발달되어 있음은 이미 아는 사실이다. 이것과는 달리, 잠자리의 눈은 인간의 것과 다르며 잠자리에게 비춰지는 세상은 인간이 보는 세상과 사뭇 다르다. 우리에게 보여지는 세상은 우리가 느끼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여기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오감이며, 이 오감이 지금의 세상이 있다라고 믿게 되는 원초적인 정보원이 되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우주만물을 에너지로 보고 있으며, 그 에너지의 응집체를 느끼는 우리의 오감에 의해서 세상이 태어난 것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이 말은 즉, 땅을 이루는 구성물질들의 에너지레벨을 우리의 감각중에 촉각이라고 하는 부분이 느낄 수 있으며, 그런 에너지응집을 시각으로 볼 수 있기에 땅이 존재한다는 개념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오감이 아닌 물리적으로 느끼는 육감이 있다면,(정신적 감각인 육감이 아닌 물리적인 제 육의 감각)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아닌 또 다른 세상이 창조되어 있을 것이란 점이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제6의 감각이 없는 지금에도, 우리가 일반적인 오감을 가진 동물들과 다른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영혼의 소리, 즉 인간의 정신적 육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 육감으로 하여금 문화, 예술, 자연과학등이 발전할 수 있게 된 것이고 그것이 바로 단순한 물리적육체를 지닌 인간과 동물을 구분케 하는 제6의 감각이다.


- 본질을 바라보는 시각(視角) -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
보이는 것이 곧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곧 보이는 것이라는 경전의 이 구절은 참으로 유명하다.
앞서 말한바 양자물리학에서 규정하고 있는 우리 우주는 텅빈 공간이고, 그 공간에는 에너지만이 있다. 이 에너지들이 원자핵과 양성자로 결합되어 분자를 만들고 분자들의 결합으로 물질이 이루어 진다.
그러하니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란 말이 참으로 마음에 와닿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여기서 '색즉시공 공즉시색'과 같은 생각의 발로를 과연 오감을 통해서만 이룰 수가 있었을까.
이 구절과 같이 본질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오감이 아닌 영혼의 육감이 필요한 것이다.

원효대사가 당나라로 가던 중 노숙을 하다. 잠결에 목이 말라 바가지의 물을 마셨는데, 그 물맛이 그리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일어나 그 바가지를 보니, 그것은 사람의 두개골에 고인 물이었고 그것을 본 원효대사는 역겨움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것이야 말로, 세상의 만물을 창조하는 인간이 가진 영혼의 힘인 것이다. 두개골이란 사실을 알게해준, 오감 중 하나인 시각이 역겨움을 생성하게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이 일화를 계기로 원효대사는 큰 깨우침을 받고 위대한 스승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어떠한 문제에 대한 본질은 오감을 통해서가 아니라 영혼의 육감으로 알 수가 있는 것이다.


- 신의 창조, 그 신을 닮은 인간 -
성경에서는 여호와께서 7일에 걸쳐 세상을 만드시고, 여호와의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첫째날 빛이 있으라 하시고, 둘째날 궁창이 생겨 물이 있으라 하였으며, 땅과 해와 달과 별, 물고기, 새, 동물들을 차례로 창조 하실 때 그분이 창조하신 이 모든것을 우리는 어떻게 알수가 있을까.
눈으로 보고, 코로 맡으며, 만져보고 맛을 보며 우리는 그 분이 창조한 세계를 볼 수가 있다.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이 말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감을 통해 느끼는 것만을 믿는다. 그 외의 믿음이란, 사제들과 고행자들 처럼 생각의 힘(육감)을 믿는 사람에게만 공유되었다.
그들에게는 세상을 창조해 가는 힘이 있었다. 실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창조해 나가는 힘을 가졌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 그러하기에 보이지 않는 것. 육감을 믿게 하는 방법론의 일종으로 종교적 믿음이 강하게 작용된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창조라는 것은 육감을 통한 정신적 산물임에 분명하고, 우리는 이것을 가능케 하기에 문화,예술과 같은 창조성을 형상화 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리라.


- 가야할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 -
인생은 여러 갈래의 방향을 가지고 있으며, 저마다 가슴에 품은 뜻이 오롯이 자신의 우주가 되어 스스로가 그 우주의 창조자가 되게 한다.
그 길에서 영원히 제 자리에 머무를 수는 없다. 우리가 걷는 길은 어느 길이건을 떠나 그 스스로에게는 온전히 처음 걷는 길일 수 밖에 없으며, 발을 떼어 내딛지 않으면 길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길을 만드는 선구자인 셈이며, 동시에 그를 따르는 무리가 된다.
하여 자신이 품은 뜻을 걷고자 하는 이가 일단 그 길을 내 딛지 않고서는 길은 길이 아니며, 그 순간 장벽이 되어 버린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길을 걷는것을 주저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머뭇거리게 하는가.
그것은 몇 가지의 단어들로 표현될 것이다.   의심, 공포, 불안.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스스로의 가야할 길을 가지게 되고 그 길을 가기 위해 계획을 세우며  가야할 길을 형상화 시키는 노력을 다하지만, 막상 그 길에 발을 딛고 나아가기를 주저한다.  

매트릭스의 네오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알지만 당시의 네오는 '그'가 아니다. 오라클이 말을 했으며 네오 스스로도 그런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 모피어스의 이 말은 내면의 네오를 정확히 꿰뚫어 본 말이 아닐 수 없다.
이미 말 했지 않은가. 어떤 길이든 자신에게는 최초의 길이고, 내딛지 않으면 가야할 길은 길이 아닌 장벽으로 다가온다는 것을. 모피어스는 그런 네오에게 그 길을 두려움을 떨쳐내고 의심없이 걷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일단 길을 내딛게 되면 네오가 '그'가 아닐 지라도 '그'가 되는 여정에 오르는 셈인것이다. 한발 한발 내딛어 그 길의 목적지까지 가는 여정동안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의심과 두려움을 떨쳐 낼 수 있는 용기와 신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길을 아는것'이 '길을 걷는 것'의 필요충분 조건이 성립되기를 바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길을 걷지 못하는 두려움의 발로는 바로 오감을 통해서 느껴지는 공포이다. 충분히 알지 못하는데 이 길을 걷다가 좋지 못한 상황이 닥치지 않을까라는... 그것은 실제로 육체적 고통과 욕구 불만족과 같은 오감의 영역인 것이다.
사업가가 실패하여, 사업이 부도날 경우 겪게될 금전적 고통 또한 욕구 불만족에 따른 고통이다.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좋은 음식과 옷을 취하지 못하게 될까하는 두려움. 그것은 시각과 청각과 미각등이 빚어낸 형상들이다.
육감을 통해 본질을 찾으려는 사람들은 그런 오감적 두려움을 상쇄시키는 신념과 용기를 수반한다.

가야할 길을 아는 것과 그 길을 걷는 것 사이에는 의심, 불안, 공포의 장막이 펼쳐져 있으며 그것을 상쇄시키는 에너지가 바로 내면의 힘에서 나오는 신념과 용기이다.

송숙희님의 '내 인생 최고의 순간'에서는 자신을 하나의 거대한 돌덩이로 보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자아상은 이미 그 돌덩이 안에 완전한채로 존재를 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길을 걷는 여정동안 그 돌덩이에서 자신의 자아상을 조각해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덧붙여 나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깍아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LIONS Rule이라는 룰을 나열한다.
그중에 S는 start 즉, 일단 시작하자고 말을 한다. 시작하기 위해서 준비를 하는 것 역시 '가야할 길을 아는것'의 단계일 뿐이다. 길을 걷고자 아무리 철저히 준비를 한다한들 실제 그 길을 걷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면의 힘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게 해주면서 아울러 문제의 해결방법까지 알려 준다. 하지만 오감을 통해 문제를 직면한다면, 우리의 오감은 그 문제의 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을 해줄것이다. '그것을 하지마', '잘못되면 오감으로 얻는 만족감이 없으니 그것을 시도해서는 안돼'라고 말이다.
자신의 우주를 창조해 나가는 것. 육감을 소유하고, 신의 형상을 닮은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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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의 여행2010/03/23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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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을 사이에 두고 걸어 오는 동안 내 안에서는 무엇인지 모를 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었다.

지난 휴식을 뒤로 한채 모든것이 그대로일줄만 알았던 그 순간들이 나도 모르는새 서서히 내면의 음성으로 부상하게 될줄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길가의 돌의 생김새, 스쳐가는 사람들과의 조우,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며 스며들던 그 곱던 오후의 햇살들......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나타났기에 아무것도 아닌줄만 알았던 모든 시간들 속의 메시지는 그렇게 내면의 음성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늘엔 어느덧 샛별이 떠올랐고 차갑다고 느껴졌던 별빛조차 지금의 나로서는 아늑한 장작불의 그것과도 견줄 수 없는 포근함이 느껴진다.

이 여행을 시작한 이래로 한번도 온전히 내면의 음성에 귀를 귀울여 본적이 없었음을 새삼 깨닫고 있었다.
내면의 소리에 귀를 귀울이려 하여도 나의 눈과 귀와 온몸의 감각은 외부를 향해 있었고, 그것은 나를 나로 살게 하는 것이 아닌 누군가를 견주어 살게 하는 스스로의 감옥이었다.

주위의 누군가가 바삐 나아가면 같이 나아가고, 뒤의 누군가가 뛰어오면 같이 뛰어가던 지나온 여행길에서 나는 없고 단지 남이 있었을 뿐이란걸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상대를 보며 이 여행을 하고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그렇게 감옥이 되도록 도움을 주고 받으며 우리는 이 여행의 길 위에 서있지 않은가.

지나온 길에서 만난 들풀과 나무와 햇살들은 우리를 보며 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아닌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한 무리의 오리들로 본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무리 중 한 마리가 외부의 영향에 놀라 방향을 바꾸어 이동하면, 무리의 나머지는 영문도 모른채 그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는 오리떼 말이다.

지난 오후의 휴식에서도 알지 못했던 스스로를 잠식하던 일련의 무게를 감지할 수 있었다. 귓가에 스며드는 내면의 음성은 그것을 실체 없는 두려움이라고 말을 해주었다.

'실체 없는 두려움'

그 두려움으로 하여금 나는 무리에서 떨어지기를 꺼렸던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호해 줄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 혹은 혼자만이 아니라는 위로와 안도감. 이 이면의 모든 이유가 바로 실체 없는 두려움이라고 했다.
지난 여행동안 이유 없이 짓누르던 나의 물음이 바로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부터 어떻게 나를 떼어놓을 수 있는가였던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단순히 어느 길을 가야 할까라는 선택의 무게라는 것이 실상은 외부로만 향해 있는 나의 감각으로 인해서 외부의 문제로 인식되게 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외부를 향한 감각은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하나 였지만, 이 문제의 본질을 내면의 음성으로 들어본다면 실체 없는 두려움을 어떻게 떨쳐 낼 수 있느냐라고 말해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내면의 음성은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장막을 거둬줬을뿐 아니라, 그 해답마저 내게 일러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면의 음성은 내게 자유롭기를 권하였다.

자유. 자유로움.
자유로움을 가지기 위해서는 쉼 없이 들려오는 내면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 않음을 느끼고 있다.
햇살을 느끼고 싶을 때 볼을 스치는 바람을 음미하고 싶을 때. 자리에 멈춰서서 햇살에 몸을 내어주고 바람에 몸을 맡기는것. 그리고 그 순간 느끼는 행복감을 간직하는 것. 어느 길을 가게 될지는 그 순간 들려오는 내면의 음성에 온전히 의지를 맡기는것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치가 않다.

자유로움이 빛이라면 실체없는 두려움은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스스로가 진정 자유로울때 실체 없는 두려움은 그늘진 음지의 어둠에 빛을 비추어 어둠이 사라지듯 스스로 모습을 감춘다.



황금빛 노을은 편안하고, 동녘에 떠 오른 샛별은 나에게 하룻밤 쉬어 가자고 말을 건넨다.
같이 걷던 사람들은 노숙이 싫은 듯 해가 지기전에 묵을 곳을 찾기위해 분주해 보인다. 갈림길은 이제 바로 앞이고, 나는 이즈음해서 노숙을 위한 채비를 한다.
오늘 밤은 진한 커피향에 노래를 흥얼거려 보고 싶다. 그러다 잠이 들어 아침에 문득 눈을 떳을때 내면의 음성에 잠시 귀를 귀울여 보면 내가 향하는 행선지를 알수가 있을 것이다.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이 아닌, 행복하기 위해 가는 여행이라고 내면의 음성은 말해 주었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희생하지 말고, 현재의 행복에 충실하고 매 걸음 걸음마다 행복을 느낀다면 내가 가는 이 길이 바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내일 아침 일어나 옮기는 발걸음이 내겐 바로 행복을 향한 여정일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고마웠다.
자유롭게 떠나는 이 여행.

자유롭게 떠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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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로의 여행2010/03/23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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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예지안은 없다. 저 언덕 너머를 알 수 없다.

불과 몇 백미터 앞에 그토록 주저하던 갈림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앞서 가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3번째 길을 선택한듯 하다.

같이 걷던 이들도 앞쪽에 시선을 고정시킨지 꽤 된듯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3번째 길로 접어드는 사람들 또한 지금 이 구간을 지났을테다. 물론 수근 거렸을테고, 그 앞 번 무리의 사람들을 주시했을테다...

 

3번째 길을 제외하곤 아직 잡초가 듬성듬성 있는 것을 보아, 인적이 드물었던 길들이 틀림없다.

햇살은 좋고, 해는 아직 중천이다. 괜한 게으름이 발동하여, 쉬어 가고 싶어진다.

길 가에 늘어진 나무 밑에 잠시 몸을 맡겨 기대어 본다.

 

지나는 이들이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이쪽을 내려다 본다.

일부러 신발 끈까지 풀어 헤치고, 윗도리를 팽게쳐 둔 뒤 이젠 아예 드러 누웠다.

하늘은 맑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이 한 잠 느러지게 잠이라도 청하고 싶어진다.

"어이 이봐요. 빨리 가지 않으면, 약속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할껍니다."

누군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을 막으며, 얼굴을 들이민다.

지난 구간에서 잠시 만나, 같이 이 길로 접어든 사람이다.

반갑다. 또 다시 갈림길에서 만나고 보니, 의례 그 사람의 생각이 궁금해진다.

 

"글쎄요. 아무래도 3번째 길이 좋지 않을까요?"

너무 뻔한 대답이라, 대화의 감흥이 순식간에 사그러 든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니, 앞서 가라고 너스레를 떨어 보낸다.

 

다시 몸을 일으키고, 밟아온 길을 돌아본다. 앞 쪽으로 갈림길이 있는지도 모르고 땅만 보며 오는 사람, 앞의 사람들과 어깨를 부딛혀 가며 바삐 나아오는 사람, 3번째 길을 보며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듯 흐믓한 표정을 가진 사람, 나 처럼 아직 선택의 기로에서 벗어나지 못해 발걸음이 무거운 사람...

 

아니야!!! 무거운 발걸음으로 어쩔 수 없이 걸을 바에 난 쉬어 갈테다. 잠시 자기 위안을 해본다.

 
나도 몸을 일으킨다.

잠시간의 휴식을 가지는 동안, 나와 같이 걷던 이들은 벌써 뒷통수마저 가물거리게 멀어져 간다.

몸을 뉘어 쉴 동안 나를 비웃듯 내려다보던 이들의 얼굴들이 하나 하나 다시 뇌리를 스친다. 그들은 이 때문에 휴식을 두려워 했던 것일게다.

두려움 가운데 자신이 하지 못하는 휴식을 배짱좋게 누리던 나를 의아함 반 질투 반으로 봤던 것일까?

아니지 지금은 오히려 그들이 그럴줄 알았다는듯 자신들의 판단에 흡족해 하며,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아는 걸 모르지... 난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구.

갈림길로 나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그런데?

그게 어쨌다는거지? 앞서 나아가는 것과, 주위를 돌아보는것이 과연 비교가 될만한 거래냐구!!!

휴식의 뒷 끝이 좋지 못하다. 느러진 나무와 햇살이 얄밉다. 마치 나를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 듯 보인다. 괜한 심통에 애꿎은 길가의 돌맹이에 화풀이를 해본다.

풀어헤친 신발끈을 다시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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